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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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발행한 『초동회 소식지』 이후, 한국의 퀴어(비연속/연속)간행물의 문장을 수집하고 연결하는 공간입니다. 발견한 문장을 보내주세요.

커밍아웃엔 대체로 다음의 3단계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중략) 3단계는 소수라는 성정체성을 세계를 바라보는 중심틀로 사고하게 되는 경우인데, 예를들면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반이라고 합니다.”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 3단계부터 자의든 타의든 그, 혹은 그녀는 공포의 변태 투사가 되는 것이다.
—『마음006』, 「커밍아웃 스토리」, 1998

어쩔 수 없이 보이지 않게 사랑해야 하는 일반 속에서 이반의 삶 덕분에 참 많은 것을 잃고, 얻었다. 나는 이반이어서 많은 것들을 가지게 되었다. 늘 고난은 나에게 선물을 주었으니까!
—『너와나』 창간호, 「♂.이반이라서…」, 1999

난 아무것도 바라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아주 가끔씩 할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날 위로하려 들거나 감싸 안으려들때까지 말입니다. 그럴때마다 내곁에서 조용히 두손으로 감긴 내 두눈을 쓰다듬어 올려 주는 손이 있습니다. 한울타리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의 손길 그 것은 우리모두가 필요로 하는 작은 바램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울타리』 창간호, 1999

같은마음은 부산경남 지역에 흩어져 있는 이반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는 작은 출발입니다. 동성애는 절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마음』 창간호, 표지 글, 1996

세상이 삐뚤어졌으니 올바르게 산다는 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삐뚤삐뚤하게 사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렇게 삐뚤어진 마음으로 이렇게 삐딱삐딱하게 쓰여지고만 창간호! 아 - 뭔가... 그윽하구나. 아, 참고로 여긴 뒷면이라능.
—『완전변태』 창간호, 뒤표지 글, 2008

내가 제일 많이 놀았을 때는 20대 후반 30대 초반 그때는 ‘G스팟’이라는 클럽이 있었어요. 그게 이제 리볼이라는 클럽으로 바뀌었고, 위치는 지금의 ‘짐’클럽. 그 전에 ‘서킷’었던. 지하로 이렇게 계단으로 내려가는 구조로 된. 거기가 가장 핫했지 연예인들도 많이 오고, 엄정화도 오고. 리볼, 지스팟, 델리스코같은 클럽이 함께 있었어요.
—『보릿자루 산책하기』 창간호, 「K」, 2022

그리고 다른 시간, 다른 공간으로 분절된 한국의 1999년 6월. 작년 출범식에 이어 한동협(한국동성애자 단체 협의회) 1주년 기념식이 열어졌다. 6월 26일 토요일 이태원 각지에서 문화 페스티발형태로.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권 운동이 무엇이고, 그것이 대체 게이들인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물어보는 사람에게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없다. 이태원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지, 그들이 발 딛고 춤추고 새벽이 무너지도록 연애하고 있는 그 곳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굳이 말하지 말자. 그저 김빠진 맥주 막처럼 진행되는 느슨한 한동협.
—『너와나』 창간호, (인용, 『친구사이 소식지』 6월호 중에서), 1997

그러니까 나는 한국 특유의 게이 드라마... 이 책에 '슬픈 유혹'도 나오던데, 다 우울하게 나오잖아. 모든 게 다 신파잖아. 너무 울고. 몰래 사랑하는데 그게 너무 힘겹고. 근데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재밌었던 것 같아. 기본적으로 다 오픈을 하고 나와서 게이끼리 만나는 거기 때문에, 내가 일반을 10년 동안 짝사랑하고 막 얘기도 못하고 이랬으면은 모르겠는데. 기본적으로 작든 크든 커뮤니티에 나와서 같이 어울리다 보니까 나는 20대 초반부터 한 번도 외롭고 우울하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 그런 우울한 생각은 오히려 지금 더 하고. 그때는 다 재밌었고, 그 아까 얘기했던 게이 공간의 음습한 그 느낌. 그조차도 약간 좀 탐험하는 느낌으로 갔었던 것 같고. 근데 종로는 기본적으로 익선동부터 시작해서, 정말 음습한 데였잖아. 지금이야 종로 3가 뒤쪽이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이 됐지만.
——『보릿자루 산책하기』 창간호, 「K」, 2022

가면을 벗읍시다!
—『초동회 소식지』 창간호, 1994

여기에도 연대나 접점에 대해 나와있는데, 늘 내가 이 얘기 나오면 하는 말인데 lgbtq라고 얘기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커뮤니티'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결속력도 되게 떨어지고, 서로 서포트하는 것도 없고, 여성의 그룹에서는 남성의 그룹을 비난하는 경우가 특히 많고, 약간 경계를 하고… 남성의 그룹에서는 내가 좀 부적절한 단어일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는 표현대로 하면... 남성의 단체들은 여성의 단체들을 신경도 안 쓰고 안중에도 없어요. 그냥 그래서 서로 교류가 없는 것 같고, 거리 크게 두고, 별개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늘 말하는 게 lgbtq에서 'g(gay, 게이)' 뺐으면 좋겠다고 'g'가 좆나 이기적이라고...(웃음)
—『보릿자루 산책하기』 창간호, 「J」, 2022

옛날에는 한 명 만나려면 한 두 시간 채팅 해서 성격이 맞는지 보고, 어렵게 약속 잡아가지고 봐. 이 사람이 별로야? 그러면 또 한 며칠 기다려서 또 한 명 봐야 돼. 이런 식인데. 지금은 오전에 한 명 보고, 오후에 또 한 명 보고, 내일 또 한 명 보고. 일주일에 한 8명 만난 다음에 그중에서 골라보는 식이니까. 아쉬움도 없고. 왜냐하면 또 만나면 되니까.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도 전에 외모가 정말 절대적으로 중요한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같아 지금은.
—『보릿자루 산책하기』 창간호, 「K」, 2022

집주인 할머니가 처음 만날 때부터 나한테 되게 당당하게 "남자예요? 여자예요?"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너무 당당하게 마치 그게 뭔가 증빙과정 같은 느낌으로. 근데 이미 나는 교포라고 얘기 한번을 못한다고 얘기했으니까 "Sorry."하고 그냥 넘어갔거든요. 근데 그래도 포기를 안 해요. 볼 때마다 묻는 거예요. "남자야? 여자야?" 그런 상황들이 매일매일 있는 거예요.
—『보릿자루 산책하기』 창간호, 「J」, 2022

나우누리에 동호회가 여러 개 있었어요. 예를 들면 내가 예전에 되게 좋아하던 '이세야 유스케'라는 일본 모델이 있어요. '스톰'이라는 패션 브랜드 모델이었거든요. 그 사람 사진 찾아서 다운받아서 보고... 그런 게 어떻게 다시 호기심으로 이어져서 그자리까지 가게 된 거예요. 나우누리 동호회 사람들이 정모를 한다고 그래서 범일동 뒤에 있는데 거기를 갔죠. 여튼 좀 두근두근하면서 갔던 것 같아요.
—『보릿자루 산책하기』 창간호, 「J」, 2022

중학교 3학년 때인가, 내가 처음으로 나우누리 뭐 이런 걸 했었어요. 그 친구들이랑 그 집 전화선 꽂아서. “삐비비비-”. 이런 거 하면 연결되고. 한번 잘못 잘못 꽂아놓고 자서 전화요금이 졸라 나와서 아빠한테 혼나고 난리였는데… 그때 그런 동호회가 있다는 걸 알고 처음으로 이쪽 커뮤니티에 갔던 게 그게 처음이었어요. 부산 지역 동아리였고, 범일동 뒤에 되게 큰 삼류 극장이 하나 있었어요. 지금은 없어진 걸로 들었는데. 거기가 크루징이 일어나는 그런 극장이었어요. 거기는 못 가봤어요. 그러니까 호기심은 있었는데, 그거는 내가 막 갈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갔었거든요. 96년...? 97년. 이때쯤이었을 거예요.
—『보릿자루 산책하기』 창간호, 「J」, 2022

pc통신을 만나것은 훨씬 전 이였지만 그 때 첨으로 통신이란 공간을 통해.. 나말고도 많은 동성애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성애자란 말의 순 우리말인 이반이란말도 알게 되었다. 그 놀랍고 신기한 화면 속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우린 다 비슷한 사람이였다.
—『와이낫』 창간호, 「나의 이반 생활 체험수기….-_-…」, 1998

헤어짐이라는것… 끝은 너무도 허무했다. 내 주위에는 그 애가 생각 나는 것밖에 없었고..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무의 연속 이였다가 나에게 감정이란 것이 생긴 것은.. 그 후 일주일 뒤였다. 그 때부터 눈물이 줄줄 흘려 내렸다. 가족들이란 것은 이럴 때 아무도움도 되지 못한다. 어떻게 “내 여자친구하고 헤어졌어..”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주위에 도움을 줄 만한 사람도 없었고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 할 사람도 없었다…
—『와이낫』 창간호, 「나의 이반 생활 체험수기….-_-…」, 1998

대구의 레즈비언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름의 뜨거운 대기가 청명한 가을하늘에게로 제자리를 슬슬 양보하는군요. 이러한 때에 “와이낫”의 회지 발간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입니다. ‘회지’는 바로 그 모임의 활동력과 결속력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척도일 것입니다. 48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메시지나 즐거웠던 만남들에 대한 추억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당당한 자신들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그리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음으로서 가능한 작업이기 떄문입니다. 이제 세상에 내지르는 와이낫의 첫 함성이 길고 우렁찬 울림으로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대구의 레즈비언 여러분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동성애 전문지 버디 편집장 한채윤
—『와이낫』 창간호, 「회지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1998

동성애자 관련 기사를 보면 악플이 엄청 많은데 혼자였다면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그런 걸 친구들이나 같은 게이끼리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공열을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뭔가를 찾게 돼요. 뒤집어지게 재미있는 공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게이 인권에 도움이 되는 게 뭘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걸 고민하게 돼요.
—『플래그페이퍼』 창간호, 「앤쵸비」, 2018

컴퓨터 작업 일주일 동안 해놓은게 다 날라가서 급하게 모임 당일 날 프린트 완성하느라 오타가 많았읍니다. 죄송합니다. 12월달에는 “오타 부인”을 잡아주실분 모이세요!! 지킴이・부지킴이 살려주세요.
—『한우리소식』 창간호, 「편집후기」, 1997